2014년 6월 동유럽 여행 후 1년4개월 만에 우리 3013 회원들은 중국 張家界를 방문한다. 방문일정은 2015년 10월 26일 부터 30일 까지 4박5일.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한 두 가족을 제외한 열 가족이 이번 행사에 동참하였다. 여행 기간중 3일 동안 날씨가 흐리고, 비가 내려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었다.
하늘 향해 솟구친 峰. 峰. 봉우리. 여기가 진정 武陵源인가!
山中何所有 嶺上多白雲 只自可怡悅 不堪持寄君(산중하소유 영상다백운 지자가이열 불감지기군)
산중에
무었이 있냐구요?
좋은 것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 영 위에 머물어 있는
흰 구름 같은 것을 들겠습니다.
그러나, 나 홀로
즐길 수 있을 뿐
임에게까지
가져다 바치지는 못합니다.
張家界(市)는 중국 湖南省 서북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中亞熱帶 기후에 속하고, 永定區,武陵源區 2개 區와, 慈利.桑植縣 등 2개
縣이 있으며 인구는 154만명. 그 중 72%가 토가족,백족,묘족등 소수민족이다.
그중 무릉원구에 자리잡고 있는 張家界공원은 20세기 80년대 초에 발견되고 개발된 유명한 風景區로, 石英砂岩峰으로 이루워져 있으며, 무릉원은 면적이 264평방 km이다. 무릉원은 "장가계국가 삼림공원" "천자산 자연보호구" "삭계곡 자연보호구"등 세 구역으로 나뉜다. 장가계 국가 삼림공원에는 "張家界", "袁家界","楊家界"가 있고, 삭계곡 자연보호구에는 "寶峰湖","黃龍洞","十里畵廊"이 주요 볼거리이다. 장가계의 원래 이름은 大庸이었다. 대용은 원래 庸國의 주요 소재지였으며, 최근 까지 대용이란 지명을 쓰다가(실제 장가계 시내에는 大庸이라고 표기된 간판 여럿을 볼 수 있었다) 등소평이 집권 후 행정개편을 하면서 張씨 들이 많이 산다고해서 1994년장가계로 바꿨다고 한다. 물론 원가계는 袁씨,양가계는 楊씨들이 많이 살아 붙여진 이름이다.
武陵源은 중국의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武(무)는 무예나 전쟁을 뜻하고, 전쟁이 났을 때 陵(능)으로써 막는다는 의미이다. 능이 막고 있으니 외부에서 아예 볼 수 없어 평화롭게 보이는 것이다. 옛날부터 전염병,가뭄,전쟁 삼재(三災)를 막는다고 했다. 그게 무릉이고 승지(勝地)이라고 중국인들은 믿고 있다고 한다.
- 첫째 날 -
약 3시간 가량의 비행 끝에 長沙 국제공항에 도착한다
도착 후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고
간단히 맥주도 한잔 합니다
식사 후 버스로 약 10분정도 이동하여(저기 전깃줄에 빨래 널은것 보이시죠?)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로 걸어 갑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楠木廳 6 호)에 도착한다
임시정부 청사 주변의 집들 (거의 전 층에 철창을 달아 놓았다)
김구선생 흉상
저기 扁額의 글씨는 "독립정신"
여기는 비상 탈출구랍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영상물 상영실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간단한 영상물을 본다
잠시 휴식을 취한다
여기는 여러가지 기념품을 파는 곳
항일운동의 흔적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앞에서
도로가 전부 돌로 만들어져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항일운동을 위해 10번이나 터를 옮겨다녀야 했고 그만큼 많은 곳에 흔적이 남아 있지만, 이곳 장사 임시정부 청사는 그 규모가 초라하고 전시 유물들도 충분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1938년 5월 6일 이곳에서 조선 혁명당 간부 출신 "이운한"의 총격으로 김구 선생이 총상을 입고, 수술 후 장사시 정부의 도움을 받아 김구선생은 장사 시내에서 서쪽으로 7km 정도 떨어져 있는 악록산(岳麓山) 녹산사에서 휴양을 취한다.
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그 곳 악록산 녹산사를 방문하지만 이번 우리 일정에는 방문할 수 없어 시내에 있는 임시정부 청사 구경으로 만족해야 했다.
장사 시내에서 장가계로 가는 고속도로 (사고로 꽉 막혀 우회해서 5시간 넘게 이동한다)
장시간 이동끝에 드디어 숙소인 청화금강호텔에 도착한다
1층 로비 천장
화려하다.역시 중국답다
숙소 주변 무릉원 시내 모습
가로등도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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