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4일차인 오늘은 크라카우에서 아우슈비츠(폴란드 지명은 오슈비엥침)로 이동, 쉰들러리스트와 안네의 일기 무대가 된 죽음의 수용소인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관람하는 날 이다.소련군이 진입하면서 급히 퇴각한 독일군이 미처 파괴하지 못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여기에서 유대인만 200만 명이 학살 당했다.물론 유대인보다 더많은 소련인과 폴란드인이 학살 당했으나 유독 유대인 학살 부분만 부각되는 것이 조금은 아쉬운 현실이다.수용소 정문에는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뜻의 "ARBEIT MACHT FREI"아르바이트 마흐트 프라이 라는 강압적인 문구가 붙어 있다.안으로 들어가면 고압전류가 흐르던 이중 철조망이 음산하게 줄지어 서 있는 막사가 보인다.이곳으로 끌려온 사람 가운데 70~80%가 도착과 동시에 독일군 의무장교의 손가락질 하나로 학살 당했으며, 나머지는 감금,기아,중노동,생체실험,사형 등으로 죽어갔다.수용소 4.5.6동에는 당시의 사진과 학살에 사용된 Cyklon B가스(1통으로 400명을 죽일 수 있다고 한다),가방,빗,안경,신발 등 수감자들의 소지품과 머리카락으로 짠 직물, 죄수복 등을 전시하고 있다. 또 화장터.가스실.집단 교수대 등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포로수용소로 들어가기 위한 표를 구입하고 입장하는 건물
포로 수용소의 출입문
이중 철조망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하리라 라는 "ARBET MACHT FREI" 아르바이트 마흐트 프라이
포로수용소 건물 내부의 조감 모형
사이클론 B 가스통
사형수 및 수감자들의 안경
장애인의 의족등 도구
식기류,찻잔 등
중요한 물건을 담아왔을 가방
어린 아이들의 신발
숙녀용 신발.그 당시의 고급 신발일듯
포로들이 일하러 나가는 모습의 그림(앞잡이 "카포"는 통통하다)
집단 교수대. (좌측 나무기둥)
마지막 포로 수용소장(아돌프 회스)이 도피 생활 후 붙잡혀 처형된 특설 교수대
시체를 소각한 화로. 당초 3대 였으나 2대만 복원하여 전시중이다
가스실 및 소각장 건물의 외부
포로들이 이 기차역을 통해 집단 수용소로 들어 왔단다. 아우슈비츠(오슈비엥침) 기차역 건물
아우슈비츠에서 점심을 먹고 우리 일행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 이동한다. 수용소 내부의 끔찍했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머리가 맑지가 않다. 한참을 달리니 오스트리아 농촌의 한적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아름답다.
오스트리아로 가는 길 휴게소 주변의 풍경과 캠핑카
오스트리아 농촌 들녘
약 4시간을 달려 드디어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에 도착한다.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이자 파리와 견줄 만한 예술의 중심지!
클래식의 고향,음악의 도시로 알려진 빈은 640여 년간 유럽의 절반을 지배한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로 미술.건축.문화등 다양한 예술 분야가 발달한 곳이다.
호이리겐(Heurigen:올해의 와인 호이에르 Heuer를 맛볼 수 있는 와인 선술집) 은 레스토랑의 한 종류로, 우리가 찾은 식당은 그 역사가 수 백년에 달하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식당이란다. 수많은 예술가는 물론이고 조지부시,푸틴등 유력 정치인들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찾았던 식당으로, 그 입구가 소박하고 정겹게 보인다.수백년 전통을 이어온 현재의 사장이 직접 식당 입구에서 주차관리 등 힘든일을 직접하고 있다.
주 메뉴인 소시지,소고기 훈제,돼지고기 수육과 감자요리 그리고 적 포도주 한잔
식당 내부의 모습
고향의 봄,해변의 여인 등 한국 관광객을 위한 레퍼토리를 선 보인다. 공짜가 아니다. 기본 10유로 .추가 연주시 한 곡당 2유로 정도씩. 안주면 받으러 온다
빈의 유명한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공해물질을 전혀 배출하지 않는단다)
오늘밤 묵을 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