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5일 차 일정(6/6. 火)
오늘은 그라나다의 꽃 알람브라 궁전을 관람하고 세비아로 이동, 세비야 대성당 및 플라멩코 공연을 관람하는 일정이다.
그라나다 이해하기
예로부터 고대 로마인,게르만계 서고트족, 북아프리카의 무어인, 팔레스타인에서 쫒겨난 유대인,그리고 이슬람 교도가 거쳐간 이곳 ,그라나다가 속해있는 안달루시아는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혼재한다. 그중에서도 스페인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이슬람 문화이다. 1238년 성립한 그라나다 왕국은 1492년 이사벨 여왕에게 그라나다를 넘길 때 까지 쇠퇴하는 이슬람 문화를 그대로 이식했으며, 그 결정체인 알람브라 궁전을 남기고 시에라 네바다를 넘어 북아프리카로 물러갔다. 스페인 문화는 흔히 이슬람 문화와 가톨릭 문화의 융합이라고 말하지만 안달루시아 지방에는 지리적인 조건 때문에 거리 곳곳에 이슬람 정서가 강하게 남아 있다. 모로코인이 운영하는 상점과 이민자들의 주거지가 많으며 도시에는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과 이슬람 사원을 하나씩 간직하고 있다. 유대인의 밀집 거주 지역이었던 유대인 거리 등도 남아 있어 유럽에서 유일하게 아랍 문명이 짙게 밴 명소이기도 하다.
710년 서고트 왕국의 위티사 왕이 세상을 떠나자 새로운 왕위 결정 문제로 권력의 암투가 시작 되면서 서고트 왕국의 아길라의 요청으로, 당시 바다건너 아프리카 탕헤르에 있는 무어인 영주 빈누사이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북아프리카 전체에 퍼져 살던 유목 민족인 "베르베르족"과 이슬람의 전파와 함께 북아프리카에서 서쪽으로 옮겨온 아랍인들을 통틀어 무어인이라 부른다)
아길라의 도움 요청을 받은 탕헤르의 무어인 영주 빈누사이르는 타리크 이븐 지야드 장군에게 1만 2천명의 이슬람 군대를 이끌고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 반도 사이의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게 명령한다. 711년 지브롤터를 넘어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온 이슬람군은 허약한 로드리고의 군대를 단숨에 격파해버리고 도움을 요청한 아길라군까지 손쉽게 무찔러버리니 서고트 왕국은 결국 내부 분열로 멸망해버린다. 이슬람군은 불과 7년 만에 북서 산악 지대를 제외한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점령한다. 그라나다는 8세기 이후 점차 번영을 누리며 1238년 왕국을 건국,나스르(Nasrid) 왕조를 열면서 화려한 이슬람 문명의 꽃을 피워 약 15세기 말까지 250년간 예술, 문화, 경제 방면에서 눈부신 업적을 이룬다. 반면 북부로 내쫒긴 가톨릭 세력은 끊임없이 저항을 계속하며 9세기 무렵부터 국토회복 운동인 "레콘키스타"를 본격적으로 펼쳐 1002년부터 강한 반격을 시작한다. 결국 1031년 쿠르도바 왕국은 멸망, 1085년 이슬람 세력의 심장이기도 한 톨레도를 점령하며 레콘키스타 운동은 격렬해지고 이슬람 세력은 위축된다. 마침내 1238년 무함마드 1세가 세운 그라나다 왕국은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로 운명을 다하며 1492년 멸망하고 만다.
1492년 1월 2일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그라나다에 입성하면서 마지막 이슬람 왕 무함마드 12세 보압딜은 모로코로 망명의 길에 올랐는데, 아름다운 그라나다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이 탄식의 고개의 이름이 엘 수스피로 델 모로(El suspir del moro. 즉, 무어인의 탄식)다. 1492년은 가톨릭 왕조가 다시 이베리아 반도를 되찾고 이사벨 여왕의 원조를 받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해 스페인이 세계로 진출하는 대항해 시대의 첫 관문이 열린 해 이기도 하다.
NEVADA PALACE 호텔에서 맞이하는 아침 그라나다 시내 모습
알람브라 궁전 안내도
알람브라 궁전 입장을 기다리는 관광객들
석류는 스페인어로 '그라나다'로 표기하고 발음한다. 알람브라 궁전 안에 많은 석류 나무가 있다
알람브라 궁전은, 나스르 왕조의 초대왕 알 갈리브(1237~1273 재위)는 상공업 발전에 힘을 쓰며 나라가 윤택해지자 1238년 넓은 대지 위에 그라나다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알람브라 궁전 건설 계획을 추진한다. 초대왕이 죽은 뒤에도 역대 왕들이 증축과 보수를 거쳐 7대 왕인 유수프 1세 때 코마레스 궁을 완성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마지막 이슬람 왕인 무함마드 보압딜은 1492년 스페인 여왕 이사벨과 페르난도 왕에게 이 궁전을 넘기고 떠난다. 이후 가톨릭 왕들은 일람브라 궁전을 조금씩 보수. 수리를 하며 왕궁으로 사용한다. 1526년 알람브라 궁전을 방문한 카를로스 5세는 이슬람 교도들이 지은 건물 사이에 가톨릭교인들이 직접 스페인 제국의 탄생을 기념할 만한 건축물을 세울 목적으로 본인의 이름을 붙인 카를로스 5세 궁전을 짓는다. 이후 18세기 가톨릭 왕의 왕위 계승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알람브라 궁전은 황폐해지고 버려진다. 집시와 고양이들이 주인 노릇을 하던 알람브라 궁전에 19세기 들어 미국인 작가 워싱턴 어빙이 1892년 방문한 후 <알람브라 이야기>를 집필하며 그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 되어 이 궁전은 주목을 받게된다.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현재 스페인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먼저 여름 별궁인 헤네랄리페 정원을 관람한다
헤네랄리페에서 보이는 알람브라 궁전
아세키아 중정(中庭)의 아름다운 모습 감상하세요
왕비와 근위병의 사랑이 전해지는 딱~ 걸린 나무
아름다운 석회 조각 기술이 돋보인다
헤네랄리페(Generalife) .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으로 알람브라 궁전을 둘러싼 성곽 건너편에 만들어진 별궁이다. 그라나다의 여름 별궁으로, 왕궁에서 동쪽으로 10여분 걸어가면 나온다. 건설 당시의 시설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꼭 봐야 할 것은 정원 안쪽에 있는 아세키아 中庭이다. 전체 길이 50m 정도의 세로형 정원 중앙에 기다란 수로를 설치하고 좌우에 많은 분수를 두어 끊임없이 물이 솟아난다. 분수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눈 녹은 물을 이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작은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내며 맑은 물이 흐르는데, 꽃이 만발한 봄에는 그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한다. 분수와 정원을 꾸민 아랍인들의 자연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정원이다.
알람브라 궁전으로 들어가는 길
아름다운 정원들
여기는 호텔인듯
카를로스 5세 궁전
카를로스 5세 궁전
1526년 카를로스 5세는 스페인 제국의 상징이 될 건축물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당시의 최신식 기법이었던 르네상스 양식을 채택해 건축을 시작했지만 자금난 등으로 건설이 중단되면서 18세기가 되어서야 지붕을 얹었다. 화려한 아랍 양식의 이슬람 궁전 한켠에 가톨릭 교도들이 세운 16세기 건물로 알람브라 궁전과의 부조화가 재미있다.
알카사바로 들어가는 문
지하 창고 및 감옥으로 쓰던 구조물
군사 들이 사용하던 변기
방어를 위한 외성벽과 내성벽
그라나나 시가지 및 대성당의 모습
알카사바(성채)에서 바라본 아랍인의 마을 알바이신 지구
성채에서 가장 높은 탑
건물의 기초부분
알람브라 제일의 전망대 알카사바(성채)는 나스르 왕조를 연 그라나다 왕국의 건국자 무함마드 1세가 9세기에 지은 로마시대 성채를 현재의 규모로 정비. 확장하였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가톨릭군의 공격을 막기 위한 군사 요새로 쓰였다. 24개의 탑과 군인들의 숙소, 창고, 터널과 목욕탕까지 갖춘 견고한 성채였다. 현재는 몇몇의 탑과 외성벽, 내성벽, 건물의 기초 등 그 자취만 남아 있다. 성채 중앙의 벨라 탑에서 내려다 보이는 그라나다 시가지의 전망이 훌륭하며, 헤네랄리페에서 다로 강을 끼고 있는 알바이신 지구, 사크로몬테, 그라나다 중심부, 그리고 멀리 시에라 네바다 산맥까지 일대의 경관을 볼 수 있다.
한때는 이곳 알람브라 궁전의 주인 노릇을 했던 고양이. 곳곳에서 살고 있다
지금부터 나스르 궁전으로 들어갑니다
나스로 궁전은 알람브라의 꽃으로 평가되며, 이슬람 건축물의 결정체라 할 만큼 아름다운 건물로 알람브라 궁전의 하이라이트.
수차례 증.개축을 반복하여 약 100년에 걸쳐 완공된 복합형 궁전이다. 내부는 방과 정원, 파티오(중정), 탑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궁전 관람은 메수아르의 방에서부터 시직된다. 왕이 집무를 보던 곳으로 벽면이나 천장을 장식한 아라비아 문양의 타일과 석회 세공의 아름다움이 대단하다. 북쪽 방에는 벽을 석회 세공으로 마감한 예배실이 있는데, 창밖으로 알바이신의 거리 풍경이 훤하게 내려다 보인다. 메수아르의 방에서 나가면 코마레스 궁이 나온다. 궁 내에는 아라야네스 중정과 커다란 직사각형 연못이 있고, 양옆으로 아라야네스를 심어놓았다. 연못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정면에 가늘고 우아한 석주가 지탱하는 7개의 아치가 있고, 그 앞에 붉게 빛나는 코마레스 탑이 있다. 연못에 비친 탑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왕이 여러 나라에서 온 사절을 만나던 공식 행사장이었던 대사들의 방은 왕궁에서 가장 넓은 방으로 한 변의 길이가 11m나 되는 정사각형 모양이다. 말굽 모양 아치의 연속적인 반원 무늬, 코란 글자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처럼 새겨져 있어 나스르 궁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되는 곳이다. 왕궁 관람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사자의 중정은 왕의 정치 집무실이자 사적인 주거 공간이었다. 왕 이외의 남자들 출입이 금지되었단다. 실물이나 기하학적 문양의 이슬람 장식으로 만든 사자의 중정은 이슬람 건축에서도 극히 드믄 예에 속한다. 중정은 124개의 가느다란 대리석 기둥으로 에워싸여 있으며, 기둥 머리를 아치로 연결한 모든 벽면에는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만들었을 것 같지 않은 정교하고 유려한 석회 세공이 빼곡하다. 중앙 정원에는 12마리의 사자가 받치고 있는 원형 분수가 있다. 사자의 입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데, 이는 이슬람교에서 생명의 근원을 의미한다. 그만큼 아랍 왕들이 신과 함께했던 신성한 공간임을 보여주는 예이다. 중정 남쪽에는 아벤세라헤스의 방과 두 자매의 방은 모카라베 기법으로 장식되었다. 모카라베란 천장을 뒤덮은 무수한 종유석 모양의 장식을 말한다.정원의 동쪽에는 천장에 10명의 왕을 묘사한 왕의 방이 있다. 역대 왕들의 침실로 사용되었으며, 내부는 몇 개의 작은 방으로 나뉘어 있다.
메수아르의 방
예배실에서는 창밖으로 알바이신 거리 풍경이 훤하게 내려다 보인다
아라비아 문양의 화려한 석회 세공 작품들
아라야네스 중정
특수 설계된 수로(水路)로 인공 호수의 표면이 거울처럼 잔잔하며 계속 물이 흘러 들어오는데도 표면에 자그마한 움직임도 없다
코마레스 궁의 연못에 비친 코마레스 탑
지금부터 나스르 궁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대사들의 방을 감상한다
지금부터는 사자의 중정
124개의 가느다란 대리석 기둥과 정교하고 유려한 석회 세공 기법이 대단하다
사자의 정원. 우상을 절대 금지하는 이슬람 문화에서 조각이라도 사자를 새기는 것은 극히 드믄 예에 속한다. 실물이나 기하학적 문양의 이슬람 장식을 깨고 만든 사자상의 분수는 알람브라 궁전은 물론 이슬람 건축에서도 독특한 면이다.
두 자매의 방 천장의 모카라베 기법의 장식들
궁전에서 보이는 알바이신 지구
궁전에서 바라본 헤네랄리페 정원
궁전 모형 청동 안내도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 관람을 마치고 세비야로 이동한다. 세비아는 로마 시대에 이미 안달루시아 지방의 중심 도시였으며, 서고트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8세기 이후에는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았지만 이는 한층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류 최초의 지구 항해사 마젤란도 이곳 세비야 과달키비르 강에서 세계 일주 여행을 시작한다.300년 후 흑사병이 돌고 강에 침적토가 생기면서 항구 기능을 상실해 대항해 시대의 막이 내렸고 세비야도 쇠퇴하기 시작한다. 1992년 국제 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당시 세워진 에스파냐 광장과 건물들은 지금까지도 관광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세비야로 가는 고속도로 중앙에는 끝없이 유도화가 피어있다
도로옆 넓은 평원에는 올리브 나무, 해바라기, 밀밭 등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스페인 아카시아 나무
그라나다에서 약 2시간을 달려 세비야 시내로 들어선다
황금의 탑 부근에서 버스에서 내려
세비야 대성당을 향해 걸어간다
세비야 대성당은 스페인에서 제일 크며, 세계 3대 성당으로 꼽힌다( 로마 바티간의 성 베드로 대성당, 영국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 스페인 세비야의 대성당). 폭 116m, 길이 76m 의 규모다. 예배당에 있는 격자무늬의 목제 제단은 세계 최대 규모로,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장면들을 황금으로 섬세하게 조각해 화려한 힘을 더했다. 예배당 안쪽에는 왕실 예배당이 있으며, 좌우에 알폰소 10세와 모후 베아트리스의 묘가 안치되어 있다. 대성당 곳곳은 프란시스코 고야, 프란시시코 데 수르바란, 발데스 레알 등 유명 화가의 명화가 장식되어 있다. 성당 남쪽에는 4대 스페인 왕국인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하는 4개의 거인상이 지키는 콜럼버스 묘가 자리잡고 있다. 관 안에는 콜럼버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 성당 북쪽의 오렌지 중정에는 분수대를 중심으로 오렌지 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나무 위로는 히랄다 탑이 보인다.
세비야의 랜드마크 히랄다 탑
세비야 구시가에서 가장 높게 보이는 탑으로 대성당 근처에 있다. 98m 높이의 탑이 우뚝 솟아 있기 때문에 멀리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12세기에는 이슬람 모스크의 첨탑이었는데, 16세기 가톨릭 교도들이 모스크를 없애고 남겨진 70m 높이의 첨탑 종루 부분에 모형물을 덧대어 지금의 모습을 완성했다. 탑 꼭대기에 청동 여신상을 장식했는데, 바람이 불면 이 여인상이 빙글빙글 돈단다.
오렌지 정원
오렌지 나무사이로 히랄다 탑이 보인다
성당 내부의 화려한 장식
세계 최대 규모의 성당 제단으로 황금으로 섬세하게 조각했다
콜럼버스 의 묘( 스페인 땅에 묻히기를 거부한 그의 유골을 공중에 올려 놓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진주로 만든 천사의 모형
각종 보물들이 전시된 방
고야의 명화로 1817년 작품인 성녀 후스타와 루피나라는 작품. 후스타와 루피나 자매는 세비야를 수호하는 성녀다.
식민지 시절 식민지에서 들여온 거대한 양의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제단
대성당에서 스페인 광장으로 가는 길목
희극 오페라 세비야 이발사를 탄생시킨 조아키노 로시니의 발코니
이건 물의 길에 위치한 수도관 이란다
370년 된 고목
엄청 큰 나무다
스페인 광장 앞 마리아 루시아 공원
세비야 법과 대학원
광장 건물 벽면의 모자이크 타일 장식.바르셀로나에서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에게 신대륙 발견 후 알현하는 모습
마젤란이 세계 일주 여행을 이곳에서 출발했다는 과달키비르 강
스페인 광장은 1929년 개최된 세계 박람회인 <이베로 아메리칸 박람회>를 위해 스페인 건축가 아니발 곤잘레스가 대규모의 건물과 공원을 설계한 세비야의 대표 광장이다. 광장 앞에는 마리아 루시아 공원이 있고, 반달 모양의 광장을 둘러싼 2개의 건물은 현재 고고학 박물관, 예술. 풍습 박물관으로 사용되고있다. 건물 앞으로는 강이 흘러 산책과 휴식을 취하기 좋으며 강을 따라 보트를 탈 수 있다. 광장 건물 벽면의 화려한 모자이크 타일 장식은 스페인 각 도시의 깃발 문양과 역사적 사건들을 타일 모자이크로 묘사, 장식해 놓았다.
플라멩코 공연장 타블라오(EL PATIO SEVILLANO)에 전시된 무용수가 사용하는 용품 및 인형
타블라오(스페인어로 '판자를 깐다')란 말 그대로 널판자로 만든 무대를 갖춘 극장식 레스토랑이다
올레~~
올레~
플라멩코는 무희의 화려한 춤사위(바일레), 가슴을 울리는 기타 선율(토케), 숨막히는 노래(칸테)가 어우러져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하는 스페인 전통 음악이며 공연이다. 플라멩코가 탄생한 것은 15~ 16세기 안달루시아 지방이라고 알려져 있다. 유대교,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세 종교가 교대로 지배하던 이곳에 로마족이 유입되어 안달루시아 지방의 춤과 노래를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부르게 되었는데, 이것이 플라멩고의 시초였다. 플라멩코는 작은 무대 위에 화려한 의상을 입은 무희가 정열적인 춤을 추는 것이다. 무대를 발바닥으로 힘차게 차며 구두 굽 소리와 절도있게 꺾이는 손동작만으로도 관중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무희에만 집중하지 말고 ,남성 무용수의 관능적인 춤과 기타 연주, 노래에도 주목해야 한다.
플라멩코 공연 관람 후 이동하여 휴식을 취하는 호텔(ABADES HOTEL)